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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아내병상 지킨 기상 캐스터 김동완의 감동 순애보
제목 5년간 아내병상 지킨 기상 캐스터 김동완의 감동 순애보
작성자 완도이야기 (ip:)
  • 작성일 2008-09-21 19:28:37
  • 추천 추천 하기
  • 조회수 1328
  • 평점 0점

 http://issue.media.daum.net/society/happy/view.html?issueid=2713&newsid=20080908112016710&p=ladykh

 

날씨처럼 사람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것이 또 있을까. 오늘은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지, 바람이 부는지, 아니면 비가 오는지. 사람들은 일기예보를 보면서 어떤 옷차림으로 밖을 나서야 할지 결정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5주 연속 주말의 일기예보가 빗나가면서 기상청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이 급증하고 있다. 원조 기상캐스터, 김동완 통보관이

그립다는 사람도 있다. 김동완 통보관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활 기상예보와 일기도로 재미+감동 선사



한국 일기예보의 살아 있는 전설, 김동완 통보관(73). 서울 화곡동의 한 다방에서 만난 김 통보관은 여전히 건강하고 활기찬 에너지가 넘쳤다. 과거 TV에서 일기예보를 하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특별히 건강관리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부모님으로부터 건강한 체질을 물려받았어요. 지금까지 크게 아파본 적이 없으니까요. 비결이 있다면 바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거예요.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방법을 터득했거든요."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건 어찌 보면, 김 통보관이 방송에서 끝까지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이기도 했다. 당시 김 통보관은 하루에 10개 이상의 프로그램을 소화해야 할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방송을 할 때마다 매번 다른 멘트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다보니 스트레스로 머리가 다 빠질 지경이었다. 그대로 몸을 혹사시키다가는 언제 쓰러질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나무 인형을 하나 사서 서랍 속에 넣어 놓고는 인형을 볼 때마다 '참자, 아량을 갖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3년이 지나고 나니, 어느 순간부터 마인드 컨트롤이 가능해졌다. 이제 웬만한 일에는 크게 감정이 동요하지 않는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젊게 산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김 통보관의 일기예보가 시청자의 꾸준한 사랑을 받은 이유는 바로 '생활 기상예보' 덕분이었다. '여우가 시집가는 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미니스커트를 입기에는 추운 날씨입니다', '불쾌지수가 80을 웃돌면 모든 분들이 짜증스러운 기분에 사로잡힙니다. 감정 관리에 각별히 유념하세요.'

그의 일기예보에는 항상 일상생활과 밀접한 이야기가 등장했다. 매일 뉴스 말미 1분 30초 동안 형식적으로 전달되던 일기예보와는 달리 귀에 쏙쏙 들어오는 재미있는 내용들이었다.

"1965년 라디오만 있던 시절에 진행자가 '날씨 듣겠습니다'라고 말하면 곧바로 다른 채널을 듣던 때였어요. 청취자에게 날씨가 좀 더 재미있게 전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생활 기상'이었죠."

김동완 통보관의 '생활 기상'은 청취자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특히 그는 '일기도'를 손으로 직접 그리면서 일기예보를 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기상청에서 20, 30년 동안 근무한 사람들도 그리지 못하는 것이었다.

"처음 기상청에 들어가면서부터 일기도 그리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2년 넘게 일기도를 그리다 보니 안 보고도 정확하게 그릴 정도가 되더군요. 어느 날 방송에서 자랑 삼아 일기도를 그려봤는데, 사람들이 너무 신기해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게 제 트레이드마크가 됐죠."



독일대사관에서 근무하던 한 외국인은 김 통보관이 일기도를 그리면서 일기예보 하는 모습이 너무 놀랍고 멋있다며 그의 방송분을 녹화 테이프에 담아 고국에 보내기도 했을 정도. '생활 기상'에 '일기도'까지. 김 통보관은 밀려드는 방송 섭외로 인해 연일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자랑하는 김에 한 가지 더 하자면, 그는 좀처럼 NG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방송 중에 기침이 나오면, 저는 그냥 편하게 해요. 그러고 나서 '요즘 공기가 매우 건조합니다. 감기 걸리기 쉬운 날씨가 예상됩니다'라고 말하는 거죠. 그럼 제가 일부러 기침을 한 줄 안다니까요. 그런 위기 상황을 애드리브로 넘기니까 NG가 날 수 없었죠."

인기가 날로 치솟다 보니 TBC(동양방송)에서는 일기예보를 뉴스 뒤에 붙이지 않고, 독립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서 별도 편성했다. 당시 TBC 이병철 회장은 김 통보관을 만날 때마다 "다른 곳으로 가지 말고 TBC에서 오래 일해달라"고 부탁했고, KBS 사장은 그를 영입하기 위해 백지수표를 내밀기도 했다.

5백억원 슈퍼컴퓨터보다 숙련된 예보관이 더 필요


요즘 기상청의 일기예보가 자꾸만 빗나가기 때문인지 김동완 기상캐스터를 그리워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금 예전과 달리 기상청은 5백억원에 달하는 슈퍼컴퓨터를 쓰고 있는데, 왜 날씨를 정확히 예보하지 못하는 걸까. 이에 대해 김 통보관은 날씨가 '독특한 분야'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날씨 분야는 아무리 최신 기계를 가져다 놓아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아요. 날씨는 그 나라의 환경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죠.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잖아요. 한 계절을 적어도 다섯 번은 겪어봐야 날씨를 예측할 수가 있어요. 그러려면 5년의 세월이 필요하잖아요. 슈퍼컴퓨터도 다섯 번은 날씨를 경험해봐야 정확한 자료를 얻을 수 있지 않겠어요? 컴퓨터를 믿으려면 앞으로 좀 더 시간을 갖고 기다려야 해요."

현재 기상청의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긴 하다. 일기예보는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기 때문에 많은 경험과 지혜가 필요한 분야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짧은 기간에는 얻을 수가 없는 영역의 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예보관은 기껏해야 3년 근무하면, 다른 업무로 순환 근무를 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예보관의 경력이 길어야 5년을 넘지 못하다 보니 숙련된 예보관이 나올 리 없다.

"예보관은 격일 근무를 해야 하고 업무가 힘들기 때문에 기피하는 경향이 있어요. 제도적으로 개선을 해야 합니다. 시간 외 근무, 공휴일 근무, 야근 수당도 줘야 해요. 또 예보관에서 부이사관, 이사관으로 승진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주고, 기상청장도 예보관 출신이 아니면 할 수 없게 해야 해요. 나중에 기상청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엘리트들이 앞 다투어 자원하지 않겠어요?"

그래도 기상예보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다는 사람들을 위해 한 가지 조언을 한다면 "날씨를 정확하게 맞추려 하지 말고, 틀리지 않도록 노력하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오늘 최고 기온이 33도이고, 내일 낮 최고 기온이 35도까지 올라갈 것 같아도, '내일은 오늘보다 더 덥겠습니다'라고 말하라는 것. 그럼 예보가 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통보관 역시 시청자들로부터 항의전화를 수도 없이 받았다. 욕을 하도 많이 먹어서 아마 오래 살 거라고 너스레를 떨 정도다. 특히 어린이날 날씨를 틀리게 예보한 기억은 지금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아내, 5년째 당뇨·실명·다리골절로 병상 투병 중




"어린이날 아침에 자신만만하게 '오늘은 어린이들의 얼굴만큼이나 해맑은 날씨가 계속되겠습니다'라고 말했는데, 방송국을 나오기가 무섭게 소나기가 쏟아졌어요. 정말 너무 창피해서 밖에 나갈 수가 없더라고요. 그렇다고 방송국에 다시 들어가자니 사람들 볼 낯도 없고. 그냥 비를 맞고 뚜벅뚜벅 걸어서 집까지 갔죠. 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김동완씨 오늘 비 안 온다더니 어떻게 된 거예요?'라고 물어봤고, 라디오에서는 '일기예보가 틀려서 어린이날 행사를 취소한다'는 방송이 나왔어요. 속이 얼마나 타들어 가던지…. 집에 가서 아내에게 화풀이를 했죠, 뭐(웃음)."

현재 김 통보관의 아내는 병상을 지키고 있다. 20년 전부터 당뇨 때문에 고생을 하다가 5년 전 합병증으로 실명까지 왔다. 실명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욕실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다. 병원에서 인조 뼈를 넣어 수술을 했지만,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재활 훈련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아내는 다리를 못 쓰게 됐고, 그로부터 3년을 침대 위에서 보냈다. 다리를 못 쓰면서 몸을 움직일 수 없으니 그 약한 몸은 더 쇠약해졌다.

"아내가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 있으니 제가 대소변을 다 받아냈어요. 그나마 그 일은 쉬운 축에 속해요. 저 혼자 힘으로 아내를 욕실로 옮겨 목욕시키는 건 너무 힘들더라고요."

아내의 병 수발을 하던 김 통보관도 체중이 8kg이나 빠질 정도로 건강이 나빠졌다. 아들 딸들이 '"이러다가 아버지가 먼저 죽게 생겼다"면서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보내자고 간청했다. 하지만 김 통보관은 아내를 보낼 수가 없었다.

"자식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요. 내가 사회적으로 명성을 얻고 성공할 수 있었던 게 바로 아내의 헌신 덕분이었다고 얘기했어요. 제가 방송 생활하는 33년 동안 혼자서 5남매를 다 키우고 대학까지 보냈어요. 저는 그저 방송하고 사회생활하느라 집안일에는 하나도 신경을 못 썼거든요. 제가 아내를 챙겨줘야지 누가 챙겨줍니까."

하지만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자는 자식들의 성화는 시간이 갈수록 더해만 갔다. 그러던 중 지난 7월, 정부에서 요양원 비용 80%를 지원해주는 제도를 발표했다. 끝내 자식들을 이기지 못한 김 통보관은 결국 두 손을 들었다. 그렇게 아내를 요양원으로 보낸 지 이제 겨우 두 달이 흘렀다.

"저도 자꾸 몸이 약해지니까 차라리 체계가 잘 잡혀 있는 전문 기관에서 간호받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양원에 가서 면회를 하고 돌아올 때마다 눈물이 나서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아요. 다시 집에 데려오고 싶은 생각만 간절해요.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모릅니다."

국회의원 출마, 30억원 전 재산 날렸지만 후회 없어

2000년 김 통보관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가 젊은 시절 힘들게 모았던 전 재산 30억원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지금 그의 주머니는 텅텅 비어 있다. 하지만 총선 출마를 후회하지는 않는다. 인생살이를 배웠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니, 이제는 사람 얼굴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30억원이라는 비싼 수업료를 내면서 배운 것이다. 더 이상 돈에 대한 욕심도 없다. 명예에 대한 욕심 역시 그렇다.

"전성기 때는 하루라도 방송을 쉬면 못 살 것 같았어요. 날씨예보를 저 아닌 다른 사람이 한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거든요. 방송을 시작한 꼭 33년 되던 1997년 11월부로 방송 인생을 접었어요. 그런데 의외로 아무렇지도 않더군요. 이제는 편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웃음)."

73년 인생을 살아오면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제 삶에 큰 욕심은 없다. 다만, 한 가지 꿈은 있다. 일주일에 하루 10분 정도 날씨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다. 날씨를 토대로 레저, 산업, 낚시, 스포츠 등과 연계해 종합적인 일기예보를 전달하는 게 그의 마지막 소망이다.

평생토록 일기예보를 했지만, 여전히 일기예보는 그에게 목마름이고, 에너지를 만드는 원동력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자리를 뜨면서도 "오늘의 날씨는 덥고 습도가 높을 예정이니, 짜증내지 말고 하루를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라는 유쾌한 멘트로 마무리하는 김 통보관. 날씨가 곧 그의 인생이다. 앞으로도 많은 시청자들은 '일기예보'를 보면서 '김동완'이라는 이름 석 자를 기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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